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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즈의 기독교사

by Liferoad posted Aug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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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즈의 기독교사
- 유목, 융합, 포스트모더니즘의 신앙-

 

 

"현재 키르기스에 들어와 있는 선교사들은 주로 한국, 미국, 호주, 캐나다. 유럽,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필리핀 등지에서 들어와 여러 영역에서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한국인 사역자는 주로 교회 개척 사역에 집중하고

유럽이나 미주에서 온 선교사들은 가정교회 형식의 소그룹 모임에 주력하고 있다."

 

 

 

- 최갈렙 (키르키즈, GMS), 본 글은 2015년 실크로드 포럼, '종교적 토양'이라는 주제 안에서 발제되었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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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Some rights reserved by Thomas Depenbusch

 

 

키르기스인들을 이해하는 배경의 뿌리는 유목에서 유목까지이다. 아직도 유목으로의 진행형이 키르기스이기 때문이다. 유목 중에서도 일반적인 유목이 아니라 높은 산악지대에서만 편안함과 자유를 누리는 유목민족이기에, 이들에게는 일반적인 유목민들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와 신앙이 자리잡고 있다.


키르기스인들은 과거 시베리아 예니세이 지역에서부터 현재 키르기스 지역에 정착하기까지 수많은 이동과 전쟁을 겪었다. 유목의 특성상 이동 중에 전쟁을 경험하면서 부족이 해체되고, 다시 이웃 부족을 정복하고, 흡수하기를 반복하면서 초원지역의 부족들과 수많은 융합의 연속을 겪었던 배경이 선(先) 이해되어야 한다.


이들은 종교성이 강한 민족이어서 가는 곳마다 신앙을 수용하고 현실과 조화시키면서, 신앙을 보존해 왔다. 지금은 유목문화의 뿌리 위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정착문화로의 기반을 내려가는 중이다. 구소련 독립 이후 모든 영역에서 키르기스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실험하고 있는 중이기에 과거와 지금까지 기독교는 이들 속에서 무엇이었고, 무엇으로 남아야 하는지의 사실적인 역사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이들의 신앙 안에는 전통적인 민간신앙과 자연숭배 사상, 샤머니즘, 중앙아시아와 터키까지 아우르는 "한-텡그리, 자연숭배사상, 네스토리안 기독교, 불교, 이슬람" 들이 깊이 버무려져 있어서 무어라고 규정하기에는 힘든 신앙의 구조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에게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민족의 문화 저변에서 보이는 것들은 본인들 스스로는 이슬람이라는 안개에 가려져있어서 그 원인을 모르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는 문화들을 규명해 보면 고대로부터 성경을 배경으로 한 성경의 흔적들이다. 이러한 문화들은 시간이 더해가면서 변질된 내용들을 가미시키긴 했지만 이들의 삶에서 아직까지 보존하고 있는 것은 투박하지만 성경적인 내용들이다. 그 배경들은 믿음의 선조들이 남긴 영향력이기에 이것을 역사적으로 규명해 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흔적들은 이들이 성경의 직-간접적인 문화 영향을 받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역사 스스로가 이 사실들을 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력을 받은 시점으로부터 성경적인 영향력이 키르기스 민족에만 머물고 끝난 것이 아니라 유목민족 특성상 이들은 다른 민족에게 영향력을 끼치면서 중앙 아시아 실크로드 그리고 한반도에까지 영향력을 끼친 역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키르기스 : 이스라엘의 주변국, 실크로드의 디아스포라 후예들이 정착키르기스와 중앙아시아는 로마, 페르시아에서 볼 때 주변지역으로서 지리적으로 이스라엘과 간접적인 영향이 있던 곳이다. 당시는 국경개념이 없었다. 실크로드 개념을 어느 한쪽으로만이 아니고, 선과 면으로써 즉 포괄적으로 정리해 낸다면 중앙아시아와 키르기스는 같은 문화권으로 어우러져 있어서, 과거부터 이 지역 사람들은 경계를 애써 나누지 않으면서 왕래를 하였기에 성경적인 영향이 직간접적으로 계속 있어 왔다.


구약의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점령되었을 때(BC 722년)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1차 점령을 받았을 때(BC 606 년)부터, 이스라엘의 디아스포라가 발생하여 돌아오지 않고 정착했던 지역들이 중동과 지금의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지역들이다. 마태복음 10장 6절에 주님이 언급한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떠나 살아가는 흩어진 나그네(벧전 1:1) 즉 실크로드를 개척해 나가면서 실크로드 각 나라에 흘어져 정착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 중 많은 유대인들이 우랄산맥과 실크로드 본선을 따라가면서 동쪽 주변나라들과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에까지 정착하며 살게 된 것이다. 혹자는 키르기즈 민족을 잃어버린 성경의 지파 중에 하나라고 언급 하기도 한다.


사도행전 2장 9절에 언급한 민족들이 이 지역의 민족들이다. 유세비우스는 누가복음 10장 1절에 언급한 70인 중 한 사람인 "다데오"(시리아어 "아다이")가 처음으로 로마제국의 국경을 넘어 예수님의 생존 시부터 서신거래를 하던 아브가르5세(오스로헨 왕국의 왕)의 초청으로 사도 도마가 "아르메니아"로 가면서 중앙아시아의 선교의 문을 열었고, 아다이가 선교사로 가면서 실제적인 선교는 시작되었다고 본다.2)


유세비우스의 스승 도로데우스에 의하면 도마는 파르티아인(Parthia)과 메디아인(Media), 페르시아인(Persia), 루만인(Ruman), 박트리아인(Bactrian), 마기인(Magi)에게 복음을 전한 후 인도 카라미나(Caramina)에서 순교했다고 전한다. 이 지역들이 키르기스와 중앙아시아에 이웃 한 나라들이다.


교회사에서 431년 "에베소" 종교회의 이후 네스토리우스를 따르던 그룹들이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들어가서 경교라는 기독교의 꽃을 피우고, 한반도인 신라에까지 전파되었다. 이는 동서를 연결한 실크로드를 통해서다.


1,000년경 전 세계 인구가 2억5천만 정도일 때, 당시 중앙아시아에서는 20개의 주요 지역 관리센터, 250명의 주교, 1,200만 명의 기독교인이 있었다.3)


실크로드의 중간 지역이었던 키르기스제국은 당시 위에서부터 아래에까지 복음을 들었고, 수도가 위치한 '추이' 지역에서는 믿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었다는 기록이 있다.45 당시는 세계의 중심은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였다.


키르기스 지역은 동,서 지역의 실크로드를 통해서 고대로부터 실크로드가 흥하고 쇠하던 14세기 말 까지 로마와 한국을 관통하는 지역에 있었다. 키르기스는 그 지리적인 중간지역에서 역사적이고 상업적인 역할을 중실히 감당할 역할이 많았다. 실크로드 지역에 전파된 기독교는 키르기스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카자흐 동부지역, 키르기스, 중앙아시아에 가까운 러시아 변방지역을 통칭하던 지역인 "세미레치예"(Семиречьеs) 지역에서 동, 서가 만나서 문물과 종교, 문화와 최신의 가치들을 전하고 향유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역사적이고,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역사


골로새서 3장 11절 "…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주후 60년 중앙아시아 민족들의 조상인 유목민 스구디아인(삭스, 삭키)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지체였다. 도마와 안드레가 이 지역을 선교한 결과였다. 사도행전 2장 9절의 바대인들의 조상인 삭스들이 고대로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를 믿고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 사람들이다. 바대인들이 오순절에 자국어로 복음을 듣고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동시대에 안드레는 실크로드 북부 지역의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으로 다녔다. "도마행전"에는 도마가 35~60년 사이 중앙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디두모 라는 도마는 실크로드 본선을 따라 순례를 하였고, 구체적으로 키르기스땅 남쪽인 오쉬와 우즈겐을 통과하였다. 도마는 실크로드에서 '디오니시’라는 청년에게 복음을 전하고 박트리아인, 하르카나인, 바대인들의 목자로 세웠다. 고대의 삭스(=삭키)인들이 살던 이 지역은 중앙 아시아 대초원과 "세미레치예'' 지역이다.


키르기스의 초기 역사는 840년 키르기스가 우이그루 제국을 격파하고 키르기스 대국으로 발돋움하면서 그 중심에 네스토리안 기독교가 몽골 침략 이전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 후 공백기를 거쳐 러시아 침략과 함께 동행한 정교가 각각 그 자리를 대신했다. 소연방 해체 이후는 한국과 미국, 유럽, 아시아, 러시아 등지에서 온 개신교와 러시아 정교가 선교를 하고 있지만, 러시아 정교와 개신교의 갈등구조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행 중이다.


네스토리안은 공식적으로 5세기 이후부터 키르기스에 들어왔다. 키르기스의 민족 서사시 "Manas"에서도 초기 키르기스 기독교(тарса)를 언급한다. "기독교인들은 골짜기에 살고 있으며, 그 바로 근처에는 페르시아인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키르기스인들은 다양한 부족과 다양한 믿음과의 접촉을 기록한 마나스 서사시(эпосМанас)에서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칼막 (калмак), 크타이 (кытай), 타르사 (тарса), 죠트 (жоот)들은 이 곳에 많다. 모든 부족들은 동쪽으로 향하여 자기 믿음으로 기도한다. 탱그리(тенгри)에게 보호해 달라고 하며 성호를 그으면서《아멘》했다.” 6)


사금바이 오로즈바꼬브(СагымбайОрозбаков)의 관점으로는 타르사(тарса)라는 말은 몇 번째 민족의 이름으로 나온다. 예를 들면 몽골의 고고타이(Кокотай)의 장례식에 타르사(тарса)들도 초대를 받았는데, 몽골 제국에도 기독교인들을 타르사(тарса)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레리흐(Ю. Н. Рерих)는 "중앙아시아의 네스토리안들은 "에르게군-아르군 (эркегун-аргун)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몽골 제국에서 네스토리안들을 타르사(тарса) 그리고 에르게군 (эркегун) 이라고 했다."고 기록했다.
몰도바예브(Mo;iAo6aeB)의 의견으로는 "네스토리안들과 타르사(тарса)는 서로 다른 부족이라도 하나의 종교 를 결합하여 하나의 부족으로 행동했을 것이다"라고 했다.7)


몰도바예브(Молдобаев)는 "마나스에 나온 "타르사 (тарса)"라는 말은 마나스 이야기꾼들이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모든 마나스츠(이야기꾼)들이 이 말의 뜻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계적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으니 본인들은 모른다 해도 처음 누군가는 타르사(тарса)는 누구였는지를 정확히 알았을 것이다. 키르기스의 구전 전통은 고대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결론으로 서사시에서 나온 네스토리안들에 대한 정보들은 고고학, 문학 그리고 사료들로 확인되었다." 8)고 했다.


키르기스 학자들도 객관적인 역사접근을 하면서 "тарса"의 단어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종교적으로 분석하여 키르기스가 역사적으로 기독교 민족과 나눌 수 없는 국가와 민족이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근대 기독교 역사


키르기스의 기독교 역사는 정치적인 시대 구분과 유사하지만 키르기스 안에서 부흥을 주도했던 타르사-켄트(Tarsa-kent), 타라즈(Taraz), 멜키(Mirki), 악-베쉼(Ak- Besim)9)의 교회들은 6~11세기까지 부흥하며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카쉬카르까지 그 영향력을 주고 받으면서 14세기 말까지 왕성했다. 753년 키르기스와 카자흐 접경지인 탈라스 강변에서 당의 "고선지" 장군과 아랍의 "지하드 이븐 살리히" 군대와의 전투에서 아랍이 승리하자 이슬람이 중앙아시아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시작했지만, 당시 키르기스 교회는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 그러나 900년경 악베쉼(Ak-Besim)에 있었던 샤흐리스탄 (Sahristan) 교회 공동체가 부흥하자 이슬람은 교회를 무력으로 해체시킨 흔적을 고고학자들이 발견했다.10)


이렇게 중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잡은 아랍은 네스토리안 기독교들에게서 교회를 빼앗아 사원으로 만들고, 기독교인들에게 살해 위협을 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를 강요하였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자는 세금을 면하여 주고 장사꾼과 상인들에게는 혜택들을 많이 주면서, 사원으로 바뀐 교회로 초청하여 사원의 예식에 참석하는 사람마다 2디르헴(은동전)을 주었다. 이때 이슬람으로 개종한 자는 주로 가난한 자이며, 엄청난 세금을 탕감받기 위한 부자들이었다. 자기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에게는 2배의 공물을 부과하고 위협하기를 계속하였다.11) 주변 나라들이 이러한 어려움이 계속되는 중에도 키르기스의 분위기는 달랐다. 지리적으로 실크로드를 오고가는 나라와 상인들에게 개방된 상태였고, 민족의 특성상 정착하지 않고 초원을 누비는 성향으로 주변과 소통을 끊임없이 계속하여 온 이유이기도 해서 모든 것을 융통성 있게 시스템을 만들어 간 결과, 9-10세기에 키르기스 카가낫(Кыргызскийкаганат)의 지위가 정점에 도달했다. 이 시대를 바르톨드(B. B. Бартольд) 는 "키르기스대국''(Кыргызскоевеликодержавие)이라고 표현 했다. 이 기간에 중앙아시아 지역은 실크로드 길을 오고 가는 상인들에게서 세금을 걷기 위해 실크로드를 통제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한 키르기스 대국에 복종했다. 실크로드의 무역로가 발전하면서 키르기스인들은 자신들의 통화단위를 만들어서 도시들을 개발하는데 주력하면서 주변의 많은 투르크 민족들을 수용하고 다양한 문화, 종교적인 제도들을 받아들였다.12)


그 당시에 탈라스에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고 탈라스 (Талас) 에미르(= 지도자) 조차 기독교인이었다.13) 이 당시 기독교인들의 마을이라는 뜻의 "타르샤-켄트"라는 도시가 존재한 것을 보면 이 당시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았고 이것이 일반적인 문화화된 것임을 반증하는 지역명이기도 하다.


키르기즈 역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잡지에 "키르기즈 대국 시대 때도 네스토리안들은 사얀-알타이(саян-алтай) 키르기즈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 되었다.14)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지역은 당시 가장 북쪽 지역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르기즈인들이 영향력이 강했던 시대에 네스토리안들은 여러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1세기에도 중앙아시아의 북쪽에 살았던 부족들이 대중적으로 네스토리안으로 개종하곤 했다.


이 당시 정치권의 관심은 종교보다는 도시 형성과 상업지구 확장과 무역로에 있었다. 키르기스의 소그디안(Sogdier)들은 11세기까지는 키르기스에 있으면서 무역로를 개발하는 상업적인 목적 이외에 교회와 수도원, 센터를 세워서 복음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목하여 현실에 실용 가능한 기술들을 전하는 역할을 활발하게 하였다.


실크로드를 무대로 활약했던 국제상인 소그드인들의 노력은 중국이 정치적으로 분열과 혼란을 겪고 있을 때에도 꾸준히 내륙 교역로를 통해서 중앙아시아와 북중국을 오갔으며 도처에 상업근거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러한 소그드상인들 가운데 기독교를 믿던 사람들은 투르크어를 말하는 현지주민과 긴밀하게 접촉하며 선교했던 것이다.15)


흩어진 유대인들 역시 소그디안들과 가세하여 이런 전체적인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았기에 교회는 11세기 후반 마지막까지 크게 위축되지 않았지만, 그 후 이슬람과의 갈등 관계에 접어들자 서서히 어려움이 시작 되었다.


러시아 학자 아브람존(Абрамзон)도 "카라-크타이(кара-кытай)부족은 키르기스족인 크타이(кытай)의 조상들이었을 것이다. 그들 네스토리안교가 주요 종교 중 하나였던 때에 현재 키르기스 영역을 1130-1213년 동안 다스렸다."고 생각한다. 16)


이 시간을 전후해서 키르기스 지역의 "네바겟"(=현 크라스나야-레치카)은 특수교육을 하는 선교사 훈련 센터가 있어서 이곳에서 선교사 훈련이 이루어졌고, 이들은 유목민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특수 훈련을 받고난 뒤에 "세미레치예"의 초원 및 중국으로 파송이 되어졌다.


이들의 동부 투크케스탄, 투르판, 위구르 가운데 활동한 흔적은 고대 도서관을 발굴하면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밝혀졌고, 6-10세기에 작성된 대부분의 기독교 고문서들은 현재 베를린박물관에 보존되어있다.17)


키르기스에는 투르크 언어를 쓴 1226~1373년도의 묘비들이 있는데 터키어로, 시리아어로, 때론 아랍어로 쓰여있고, 카라-즈가치, 부라나, 크라스나야-레치카 등에서 많이 발견 되었다.18) 미주(未註)의 Ч. Джумагулов의 책 전체는 키르기스 경내의 모든 묘비글을 학문적으로 규명한 책인데 이 책에는 절반 이상을 키르기스 경내에서 발굴한 네스트로안들의 묘비석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은 당시가 구소련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리를 학문적으로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구소련 어디에도 키르기스에서 처럼 많은 양의 네스토리안 묘비와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키르기스지역 곳곳은 네스토리안 유적의 모판이다.


구소련지역의 네스토리안 관련 묘지는 모두 키르기스에서 발굴된 것이 보내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키르기스에서만 700점 이상의 묘비가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중 하나는 지역적으로 천산남로가 키르기스 남쪽과 만나고, 천산북로가 키르기스 북쪽과 만나는 교차점에 있었기에 동,서와의 교류 중에 비교적 그리스도인이 많았던 지금 키르기스 지역에 정착했던 키르기스 경내의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공존하여 살았다는 것이 정설이고, 이것을 뒷받침하는 역사적인 근거는 묘비 글들이 시리아 글이 주류이면서도 터키어, 아랍어, 소그드어 그리고 간헐적으로 우이그루어, 페르시아어들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키르기스가 부흥하던 8세기 이후부터 기독교의 몰락이 일어났던 14세기 초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제한적이었기는 하지만 다시 한번 부흥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다른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1375년 "카탈로니아 지도"에는 키르기스 이스쿨 북쪽에 십자가의 모양이 그려져 있는 건물이 있고, 이스쿨이라는 지역에 아르미안 형제들의 수도원이 있는 이곳에 사도 마태의 신체가 보관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19)


여러 문서들은 사도 마태의 신체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있고, 14세기 세계적인 지도로 정평이 나있던 "Catalan Atlas 1375"는 당시 이슥쿨 지역의 마태의 무덤은 당시 모든 실크로드를 지나는 여행객들의 순례지였고, 누구나가 알고 있었던 순례지였다.


15세기 이후부터 17세기까지 공백기를 지나다가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침략이 노골적으로 시작되면서 정교회는 제한적으로 중앙아시아에 들어와서 교회를 세웠으나, 주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해 오는 러시아인들을 위한 민족 교회였고, 본인들 스스로도 민족 종교로 만족했다. 키르기스인들 또한 침략자의 종교를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문화적인 영향력은 있었지만 복음적인 영향은 끼치지는 못했다.


1864년 러시아 군대가 투르케스탄을 정복하면서 중앙아시아 무슬림의 성지들에 숨어있는 시민들을 사격하면서 침입하였고, 그 다음해에 타쉬켄트를 정복하면서 처음으로 십자가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도시에 들어간 그룹은 정교회의 신부들이었다. 가는 곳마다 정복하고 모든 것을 파괴한 러시아 군대를 앞세우고 온 이들을 현지인들은 미워할 뿐아니라 점령군과 같이 입성하면서 신부들이 들고 온 십자가는 그 깊이를 알기 전에부터 기피의 대상 이었다.20)

 

 

현대의 키트기스 기독교 역사


현대의 기독교는 130년 전 첫 번째 복음주의 교회가 레닌쁄 지역에 독일 침례교회를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가장 최근사에는 독립되기 전인 1985년에 독일계 러시아 국적의 선교사 안드레이, 이리나 피터슨 부부21) 가 나른 지역에서 가정교회 형식의 모임을 시작하였다. 이 때 모여든 성도는 키르기스인들이었다.


안드레이 피터슨은 전기 기술공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키르기스 최근 선교역사는 처음으로 산악 유목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전한다. 1990년 처음으로 독일 침례교인들을 위한 개신교회가 생겼다.


1991년 4월부터 한국인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여 러시아어로 예배하는 즉 고려인 교회, 러시아인 교회들, 소위 다민족 교회가 많이 설립됐다. 1997년 6월 최근봉, 황복순 선교사 부부22)가 한국 선교사로서는 처음으로 키르기스어로 예배하는 키르기스인들의 교회인 '비쉬켁 중앙교회'를 비쉬켁 외곽(가가리나 274번지) 에 설립하였다. 당시 키르기스에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많이 주재했지만 한국인 선교사들은 처음부터 키르기스교회들을 개척하지 않았다. 처음 키르기스 교회를 설립할 당시 1997년에는 키르기스인 교회 보다는 다민족 교회설립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침례교회 지도 아래서 예배하던 키르기즈인 성도들이 대거 러시아 침례교회를 빠져나와 키르기즈 모임을 만들고 키르기즈 교회를 설립하였다.


현재 키르기스에 들어와 있는 선교사들은 주로 한국, 미국, 호주, 캐나다. 유럽,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필리핀 등지에서 들어와 여러 영역에서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한국인 사역자는 주로 교회 개척 사역에 집중하고 유럽이나 미주에서 온 선교사들은 가정교회 형식의 소그룹 모임에 주력하고 있다.


2000년도 이후부터 현지인들이 세운 키르기스 교회들 안에서 인근 우이그루 신장 지역과 카쉬카르, 파미르 그리고 키르기스인들이 주로 많이 분포해 있는 중국 서쪽 내 악수, 악치, 악토23) 지역인 중국 산악지역으로 선교사로 나가는 소수의 키르기스인 선교사들을 돕고 이들을 후원하는 그룹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구도 접근하기 힘든 지역에 현지인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 모임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키르기스의 신약성경 번역은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되었으며 ("Инжил” ЫйыкИнжил китеби, 1991년), 신구약 성경 합본 일명 "초르늬의 성경” Библия-кудайдыный ыксθзу도 중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번역이 되었다(1998년). 그 후 다시 2001년 "쵸르늬의 성경"이 번역, 보완되어 ''질료늬의 Библия  성경"으로 출간되었다. 이 "질료늬의 성경”도 처음에는 성경 제목을 러시아어의 Библия(2001년) 출간 했다가 키르기스 현지인들이 러시아 성경의 뉘앙스가 많음을 지적하여 순수 키르기스어 의미인 Ыйыккител(2004년)으로 재출간하였다. 키르기스 교회는 거의 이 ''질료느의 성경"을 읽고있다. 아쉬운 것은 신약성경은 믿지 않는 이슬람번역가가 번역을 하였고, 구약성경은 러시아 침례교회 현지인들이 주도가 되어 번역이 되었다.


키-한 신,구약 성경은 2007년 6월에 임은실 선교사가 신약을 시작으로 구약들을 편집하여 출간했다.

 

 

교회들의 현황


2009년 1월 키르기스에 새 종교법이 발표되고, 2015년 새로운 종교법이 발표되었다.


'91년 이후부터 2009년까지는 10명 이상의 설립멤버만 있으면 교회설립이 가능했고, 선교사비자를 허용 했다. 현재 바뀐 종교법의 핵심은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서는 키르기스 국적을 가진 성인 200명(2009년), 500명(2015년) 이상의 성인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고 소규모의 집회에서라도 법을 어기고 소위 가정교회, 신고하지 않고 모이는 지하교회들은 불법집회로 규정하여 몇 명이 모였다 해도 불법적으로 모인 집회는 각 개인당 벌금을 각각 부과한다는 것이다.


이 요건을 갖추지 못해서인지 최근 5년 동안 종교성에 정식으로 등록된 개신교회는 하나도 없다. 지금은 각 교회마다 예배 참석자들이 줄어들고, 신학교는 학생 모집이 어려워 폐교하는 경우도 있다. 새 종교법이 발표된 후 만 5년이 지났다. 아래 자료는 2002년에서 2013년까지 키르기스스탄 내 산재한 교회들의 증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선교 20주년 기념을 기념하는 백서" 위원들이 모여서 그간의 보관되어 오던 통계 자료들을 모으고, 부족한 부분과 최신정보들은 긴 시간 전국을 돌며 조사하고 수집한 자료들 중의 일부이다.


아래는 1990년 개신교회가 키르기스에 세워진 이후부터 전국 개신교회의 현황이다. 정교회의 교회숫자는 러시아인들에게 국한 되는 것이기에 제외시켰다. 한국 선교사가 세운 교회들을 중심한 전국에 산재하는 교회들의 통계라 보아야 거의 정확 할 것이다. 한국 선교사들이 키르기스에 복음을 전한 지 24년이 되었다. 급격히 변화하는 상황에서 큰 그림으로서의 통계는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연도별 지역별 교회증감현황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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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통계에서 보듯이 실크로드가 다시 열린 짧은 시간에 중앙아시아와 키르기스에도 복음의 꽃이 피고 교회가 세워지는 것은 과거 이 지역을 지나간 믿음의 선배들이 뿌린 씨앗이 적지 않은 배경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 이 땅을 지나간 선조들과 교회는 체질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교회였고, 키르기스에서는 실크로드를 이용하여 끊임없이 실크로드와 "세미레치예" 지역에 복음을 전할 사람을 보냈던 역사이다. 그 결과 1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 땅은 이미 복음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역사에서 복음의 서진이라는 단어가 논의되는 것은 철처히 한 쪽의 입장에서만 본 무지에서 출발했든지, 동양 교회사를 지워버릴 의도로 시작된 서양교회들이 의도적으로 숨기려했던 자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땅에서 시작한 복음의 동진은 이미 역사적으로는 이루어진 일이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를 우리는 모를 뿐이다. 그간 이 땅에 뿌리 내려온 환경은 늘 편안한 환경은 없었다. 어려운 환경 중에도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하고 때론 수많은 선진들의 순교의 피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티무르가 사마르칸트에서 네스토리안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기 위해서 개종을 원치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머리를 10,000~12,000개를 쌓아두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개종을 강요했을 때 참수대를 올라가면서 눈물로 기도한 성도들의 기도 ”주님 우리 자손들에게는 자유롭게 주님을 예배할 수 있는 축복을 주옵소서”를 잊지 말아야 한다.25)
우리들이 부름받은 중앙아시아와 키르기스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들이 배여있는 곳 이기에 갈수록 이 지역은 복음의 꽃이 만발하는 것은 곧 이루어질 사건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주 (未註)
1) 정학봉, "경교의 이야기" (서울: 도서출판 동서남북, 2009), P153
2) 정학봉, 「사도도마의 이야기」, (서울: 도서출판 동서남북, 2012), p. 124-126
3) 사무엘 H,마펫, 김인수역, "아시아기독교회사" 1권, 서울: 장신대출판부, 1996, P. 589
4) Ч. Джумагулов. ЭпиграфикаКиргизии. Фрунзе. 1987. p39
5) "세미레지예" 지역은 포괄적인 지역 이해가 필요하다. 키르기스나 카작인이 정리하는 개념과 러시아인이 정리하는 개념은 완전히 다르다. 고대에는 "제띠수" 지역이라고도 불렀던 초원 무역로였다. 러시아가 정복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세미레지예" 문화가 형성되어 있을만큼 실크로드 선상에서 중요한 역할이 있었던 지역이다. 천산북로와 키르기스, 카자흐 일부이다. 일반적으로 중앙아시아 동북쪽 지역을 지칭하는 지역이다.
6) Аскар МАМБЕТАЛИЕВ. СледХристанаШелковомпутиИсторияХристианствасредикыргызскихплемен бишкек, 2013, p30
7) 몰도바예브, "키르기스가 크리스찬이었다고?” 2011 http://history, krsu. edu. kg/index. php?option=com
_content8itask=view&id=2768iltemid=58
8) 몰도바예브, “키르기즈가 크리스찬이었다고?” Online 2011 http://history, krsu. edu. kg/index. php?option=com content8itask=view&id=2768iltemid=58
9) 악베쉼 유적지는 비쉬켁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토크목의 부라나 근처이다. 이 지역은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다. 이 곳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실크로드의 전설적인 바자르가 있던 악베쉼 성이 발견되었다. 악베쉼 성 안에는 네스토리안 종합센터가 건립되었던 것을 구 소련시절 고고학자들이 발굴했다. 이곳의 구조와 건축 기법은 "타쉬라밧"의 네스토리안 수도원과 같은 구조였다. 성 밖의 샤호리스탄 교회는 성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고, 동시대 그 주변에는 절터도 몇 개 있었다.
10) Ч. Джумагулов. ЭпиграфикаКиргизии. Фрунзе 1987. p39
11) МанарбекБайеке. История Христианствв Ценральной Азииив Казахстане. Алма-ата. 2009. P195
12) Бутанаев, Ваnd Худяков, Ю. История Енисейскихкыргызов. Абакан: ХГУим. Н.Ф. Катанова, 2000.
13) Русская Православная Церковь. Бишкекскаяи Среднеазиатская Епархия. История Православияв Киргизии. [Online] 2012. http://www.eparchy.kg/site/history.html
14) Этномаданийалакалардынтуркцивилизациясындагыролу. Садырова, 3. [ed. ] A Жуманалиев. Бишкек: Кыргыз Республикасыны Улуттук Илимдер Академиясы, 2008, Кыргызстантарыхынынмаселери.
15) 김호동, 동방기독교와 동서문명, 서울:까치사 2002 P. 170
16) Ч. Джумагулов. ЭпиграфикаКиргизии. Фрунзе 1987.
17) 마나르벡 바이케. 실크로드와 카작스탄의 기독교의 역사. 알마아타. 2009. P167
18) Ч. Джумагулов. ЭпиграфикаКиргизии. Фрунзе 1987.
19) 카달로니아 지도에 나타난 지역은 이숙쿨 둡 지역의 "쿠르멘트"이다. 이숙쿨 호수 주도로에서 해안으로 400m 정도를 내려가면 맨끝 부분 작은 반도에 문헌에 나오는 마태의 신체가 보관되어 있었던 지역이 나온다
20) 마나르벡 바이케. 실크로드와 카작스탄의 기독교의 역사. 알마아타. 2009. P324
21) "안드레이 피트슨"은 독일계 러시아인이다. 어린 시절 추이주의 “크라스나야-레지카"라는 지역에서 자라서 소연방 때에도 줄곧 현지인 침례교회를 출석했다. 그후 그는 그의 전문기술인 전기 기술자의 신분으로 나른으로 가서 일하며 복음을 전했고, 주로 키르기스인들을 대상으로한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 후 이숙쿨 등지에서도 사역을 한 키르기스 현대의 최초의 선교사요 복음 전도자로 불릴 수 있다.
22) 최근봉/황복순 부부는 1993년 키르기스 선교사로 왔다. 처음부터 그 사역을 키르기스어를 하는 키르기스인 사역으로 정리하고 키르기스 외곽지역에 키르기스인들이 모이는 키르기스 중앙교회를 설립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키르기스 교회를 설립했고, 2008년까지 교회개척을 하여 현지 리더쉽을 세우고 이양을 하였다. 부인 황복순 선교사는 키르기스 대학생들을 위한 공동 체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23) 이 지역들은 유목을 하던 키르기스인들이 자신들도 모르던 중 국경이 나뉘어 지고, 국가적으로 혁명이나 난을 당하여 도주한 키르기스 인들이다. 이 지역에 사는 키르기스인은 20만이다. 주로 중국과 키르기스 국경지역에 많이 살고 있고, 우름치와 파미르 지역에도 소수로 살고 있다. 이들의 주거지는 주로 산악지역이다,
24) 괄호 밖의 슷자는 10명 이상을 기준으로 한 경우의 교회숫자이고, 괄호 안의 숫자는 20명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의 교회 숫자이다. 참고로 2002년, 2006년 통계는 20명을 기준으로 계산했다, 20명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 오히려 2013년의 교회 숫자는 2002년, 2006년보다 많이 줄어 들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2009년 새 종교법 시행 이후 새로운 가정교회들이 설립되었으나 기존 교회의 출석교인의 숫자는 많이 줄었다. (자료출처 컨설 : 백서편집위원회, “키르기스컨설 20주년 기념 백서”, 2013년, 비쉬켁)
25) 마나르벡 바이케. 실크로드와 카작스탄의 기독교의 역사. 알마아타. 2009. P283

 

 

- 최갈렙 (키르키즈, GMS)
- 2015 실크로드 포럼(터어키), '종교적 토양' 주제 발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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