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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투르크계 이슬람 이해 (1)

by Liferoad posted Aug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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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투르크계 이슬람 이해(1)

 

 

"중앙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에게
현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 김성운 교수, 본 글은 2015년 실크로드 포럼의 주특강 시간에 발표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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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Some rights reserved by mariusz kluzniak 

 

 

들어가는 글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은 소련연방에서 독립한 이후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슬람에서 찾고, 부모들로부터 전해 받은 종교적 행위들을 실천하지만 아직은 그런 행위들이 이슬람 신앙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터키 등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슬람 전파자들의 활동이 이들의 이슬람 이해에 영향을 미치고 이슬람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런 상황은 중앙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에게 현지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작업이 간단한 것이 아니다.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국가들의 이슬람 이해와 해석을 연구하는 데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 분야에 대한 연구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터키계 무슬림들은 오래 전부터 이슬람을 자신들의 종교로 수용해 다양한 형태로 이슬람을 실천해 왔지만 그것을 신학적이고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거기에다 최근 한 세기 동안 소련연방에 편입되어 무슬림들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정신적 지도자나 신학자가 배출되지 못한 것도 종교적 실천은 있지만 신학은 정리되지 못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중앙 아시아 이슬람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료들의 대부분도 구소련의 문화인류학자나 종교학자들이 체제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는데 이바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참고자료로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이슬람에 접근 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터키 이슬람을 통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최근에 와서 그 외형은 많이 달라졌지만 터키는 중앙아시아 투르크계와 공통적인 역사적, 언어적, 종교적 뿌리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이 이해하고 해석한 이슬람에 대한 풍부한 자료와 연구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종교인과 정치인들이 터키 이슬람을 자신들이 정립해 나가야 할 이슬람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러 차례 우즈베키스탄과 키르키즈스탄에서 단기사역을 했지만 그들의 신앙세계에 대한 연구나 터키인들과 비교연구를 한 경우는 없었던 필자는 중앙아시아에서 사역하는 분들의 논문을 지도하면서 위구르에서 터키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무슬림들의 이슬람에 대한 이해와 실천에서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몇 가지 이유를 근거로 터키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중앙아시아 이슬람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본 작업을 시작하였다. 필자의 작업은 연구의 결과라기보다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가 더 낳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풍부한 현지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동역자들의 스스럼없는 비평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1. 투르크인들의 이슬람 수용과정에 있어서 종교적, 문화적 토양의 역할


투르크인들의 이슬람 수용과정과 이슬람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현재의 투르크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슬람 이해와 실천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현재 투르크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이해와 실천을 만들어낸 것은 그들이 이슬람을 수용하기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종교의 토양 위에서 이슬람을 해석하고 자신의 것들로 받아들이게 된 역사적 과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투르크인들의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을 어떻게 수용하였는지를 살펴 보는 것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1) 이슬람 수용과정
 

현재의 중앙아시아 투르크족의 선조라고 할 수 있는 중앙 아시아의 투르크족이 이슬람과 본격적으로 접촉한 것은 642 년 네하벤드(Nehabend) 전투에서 아랍 이슬람군이 페르시아인들에게 승리하고 지금의 이란 지역이 이슬람화 하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네하벤드 전쟁 이후 중앙아시아로 진출한 이슬람군은 투르크족들을 계속 압박하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이도록 권고 하였지만 투르크족의 무력으로 이에 저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정황은 아랍군의 강한 공세에 직면한 투르크계 카를룩(Karluk) 왕조가 중국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한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당나라가 파견한 고구려 출신 고선지 장군은 투르크족들의 기대와는 달리 타쉬켄트의 왕과 주민을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 사건은 아랍 이슬람에 대해 적대적이던 투르크족들이 친 아랍 이슬람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중국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과 위협을 느낀 카를룩 왕조는 750 년 이슬람 압바스 왕조의 호라산 총독인 아부 무슬림(Abu Muslaim)에게 지원을 요청하였고, 751 년 중앙아시아 탈라스 전투에서 압바스 이슬람군과 투르크의 동맹군이 당나라 군대를 격파함으로서 투르크족이 이슬람을 수용하는데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물꼬가 트인 이슬람과 투르크족 사이의 교류는 압바스 왕조의 제 2 대 칼리프 아부 자파르 알-만수르(Abu Zafar Al-Mansur) 시대에 와서는 투르크족이 압바스 왕조의 요직에 기용되기까지 발전하였다. 그리고 칼리프 알 마문 (Al-Mamun)과 알무타심 ((Al - M utasim) 시대에는 압바스 왕조 내 투르크계 용병이 18,000 명에 이르렀고 곧 그 수가 35,000 명으로 증 가하였다. 이러한 교류에 힘입어 9 세기 중반에는 여러 투르크계 부족장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압바스 왕조와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던 대다수의 투르크계 부족들은 이슬람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못하였다.


일반적으로 투르크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슬람을 받아 들이기 시작한 것은 대략 900 년 정도로 여겨진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중앙아시아에 분포하고 있던 투르크계 유목민들과 이 지역으로 진출한 무슬림들과 접촉이 있었지만 이슬람이 투르크계 유목민들 사이에 영향력을 확산하게 된 계기는 900 년경 카라한(Karahan) 부족이 이란계 사만조(Saman)에 의해 이슬람을 받아 들이면서부터이다. 카라한 부족은 9 세기 중엽 위구르 제국이 붕괴되고 난 뒤 중앙아시아 세부지역을 평정하 면서 카라한 왕조를 세웠다. 카라한 왕조는 최초의 투르크계 이슬람 왕조였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의 투르크족이 이슬람을 수용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현재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을 중심으로 셀축 (Selçuk)왕조를 건설한 오우즈(Oğuz)족의 이슬람 개종이라고 할 수 있다. 오우즈족은 11 세기 조반 경 대부분 이슬람화 되었으며 14 세기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영향으로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대부분의 투르크족들이 이슬람을 수용하게 되었다.


투르크 민족이 이슬람을 수용한 연대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지만 이슬람을 수용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터키 학자들 사이에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주장이 존재한다. 첫 번째 주장은 터키 역사학계의 공식적인 견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슬람을 수용하기 이전 중앙 아시아 투르크 유목민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인 신앙이 이슬람과 아주 유사했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리고 자발적으로 이슬람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 들였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의 배후에는 야만족이었던 투르크계 유목민들이 이슬람을 수용한 덕분에 문명화 되고 세계사의 주역으로 떠오를 수 있었고, 오늘날의 터키와 터키 민족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도 이슬람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떠나서 터키라는 민족과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인 입장과는 반대로, 터키인들의 이슬람 수용 과정은 강압과 학살 등 강제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런 주장의 배후에는 터키가 이슬람과 분리되어도 존재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없고, 오히려 민족과 종교를 일치시키는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터키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라는 생각이 놓여있다. 터키인들의 이슬람 수용과정과 관련된 이러한 논쟁들을 살펴보는 것은 터키 건국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온 정치, 문화, 사회의 미래와 관련된 세속주의자들과 종교주의자들의 논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다루려는 관심사는 아니다. 어떤 한 민족이 새로운 종교를 수용하는 과정이 완전히 자발적이거나, 강압적인 일방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투르크 유목인들의 이슬람 수용은 외부의 강압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좀 더 자발적인 형태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생각은 앞으로 살펴보게 될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의 투르크 부족들의 이슬람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이고 문화적 토양과 이슬람의 수용형태를 살펴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사회, 문화, 종교적인 토양과 이슬람 수용형태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 투르크인들의 이슬람 해석과 실천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2) 종교적 문화적 토양과 수용형태
 

이슬람 이전 투르크 부족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회, 문화, 종교적인 토양과 이슬람 수용형태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 투르크인들의 이슬람 해석과 실천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다. 투르크계 유목민들 사이에 이슬람이 퍼져가던 10 세기경 그 지역을 여행했던 이븐 파즐란(İbn Fazlan)이라는 아랍인이 남긴 여행기와 같은 문헌들과 10-13 세기 아랍, 페르시아 역사가들과 지리학자들의 기록 그리고 중국의 문헌들과 같은 역사적 자료들은 투르크족들이 이슬람을 어떠한 형태로 수용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이러한 자료들은 당시 아랍상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투르크계 유목 부족들이 이슬람 교리나 종교의식에 대한 분명한 이해 없이 단지 표면적이고 형식적으로만 이슬람을 수용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러한 기록은 투르크계 유목민들이 이슬람을 아랍 무슬림이나 이란 무슬림들과는 다르게 자신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해석하고 수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투르크계 유목민들이 어떠한 형태로 이슬람을 해석하고 수용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슬람이 투르크계 유목민들 사이에 전파될 당시의 사회, 경제 그리고 종교, 문화적인 배경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슬람 이전에 투르크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사회적이고 문화적 배경이 이들이 아랍이나 페르시아와 다른 이슬람의 형태를 수용하는데 중요한 역사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터키 학자들이 투르크 유목민들이 비교적 큰 마찰 없이 이슬람을 수용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투르크인들의 전통적인 토착 신앙과 유목민들의 약탈전통이다. 이슬람이 중앙아시아에 퍼져가던 시기에 그 지역을 여행했던 아랍이나 페르시아 상인들의 눈에 투르크족이 수용한 이슬람이 표면적이고 형식적으로 보였던 것은 이 지역에 전파된 것 이 전통 순니(Sunni) 이슬람이 아니라 신비주의 수피(Sufi) 이슬람이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수피 이슬람은 전통 율법주의 성격을 가진 순니 이슬람과는 달리 형식주의나 율법주의를 고집하지 않고 신앙의 내용이나 형태에 있어서 상당히 융통성을 보인다. 그런 수피 이슬람 종파들이 투르크인들의 전통적 토착신앙과 자신들의 신비주의 이슬람을 접목하여 열정적으로 이슬람 포교활동을 했고 그 결과 이슬람은 투르크인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슬람이 투르크 부족들 사이에 신비적인 형태로 전파된 것은 이슬람이 신비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수피 이슬람 신비주의가 투르크인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무속적 토착신앙과 일치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을 수용하기 전 중앙아시아의 투르크 부족들이 지니고 있었던 전통신앙은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자연숭배, 조상숭배, 샤머니즘과 함께 이란에서 전파된 조로아스트교와 동쪽에서 전파된 불교 등과 같이 신비적인 성격이 강한 것들이었다. 투르크인들의 그러한 신비주의적 종교적 성향이 이슬람을 수용하는 형태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도 터키뿐만 아니라 모든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국가들의 이슬람 해석과 실천에 결정적 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투르크인들의 이슬람 수용과정에 있어서 수피즘과 전통적 토착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역사적 문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무미건조한 금욕주의는 거부하고 무아경의 신비를 추구하던 호라산(Horasan) 종파 출신의 이란, 터키계 수피들이 투르크인들의 이슬람 수용 과정에서 한 역할에 대해서는 푸아드 쿄프룰(Fuad Köprülü)의 “터키 문학에서 첫 신비주의자들” (Türk Edebiyatında İlk Mutasavvıflar)라는 글을 통해서 볼 수 있고, 데빈 (Devin De Weese)의 알튼올두 (Altin-ordu) 지역의 이슬람 수용과 관련된 연구도 이 지역에서 이슬람의 확장에 신비주의적인 성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카라한 부족의 이슬람 수용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잘 알려진 살툭부라한 협정 (Tezkire-i Saltuk Buğra Han 에서도 그러한 사실이 잘 드러난다. 9 세기경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카라한 부족의 왕이던 살툭 부라 한이 수피들의 지도자로 추앙받던 하즈르(Hazır)의 인도로 이슬람을 받아들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자료들은 투르크인들 가운데서 이슬람 수용과 확장이 아랍 정통 이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부분 이란의 신비주의적인 해석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투르크인의 이슬람 수용과 이슬람화 과정에 있어서 아랍 이슬람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오늘날 터키나 아제르바이잔을 제외한 중앙 아시아의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정통 순니 이슬람이 터키를 대표하는 공식적인 이슬람으로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란 수피들이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슬람을 전파했다면 아랍 이슬람은 정치와 군사적인 부분과 관련된 영역에서 투르크인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에서 투르크인들에 의해서 발흥한 대셀축 제국과 아나톨리아 셀축제국 그리고 이런 제국을 계승한 오스만 제국은 순니 이슬람을 국가의 공식적인 이슬람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후에 살펴볼 터키인들의 이슬람 해석에 대한 두 흐름은 이슬람의 수용과정에서 나타난 이러한 두 흐름이 만들어낸 자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투르크족이 이슬람을 쉽게 받아들이게 된 또 다른 문화적 토양은 이슬람의 지하드(Jihad) 개념과 어울리는 약탈전통이었다. 이슬람은 무함마드 당시부터 이슬람을 거부하는 반대파나 이교도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이슬람을 포교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전쟁을 치렀다. 이슬람 군은 이슬람을 보호하고 포교하기 위한 이런 전쟁을 거룩한 전쟁으로 합법화하고 아라비아를 넘어서 아프리 카와 페르시아 그리고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아랍 이슬람군은 지하드를 치르면서 획득한 전리품과 사람들을 자신들의 전통에 따라 분배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이슬람을 수용한 다른 민족들에게도 지속되었다. 이슬람의 전쟁, 약탈 문화는 초원지대에서 거주하던 투르크인들이 생계의 수단으로서 가지고 있던 전쟁과 약탈의 문화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투르크인들 이 이슬람으로 개종하자 생계의 수단으로서의 전쟁과 약탈이 신을 위해 수행되는 거룩한 전쟁으로 승화되었다. 이전에 단순히 노획물을 위한 전쟁이 신과 종교를 위한 의미를 갖게 되자 투르크인들에게 전쟁에 잠여하는 것과 전쟁에서 죽는 것은 상당히 명예스러운 것이 되었다. 이슬람에서는 전쟁에서 전사하는 사람들은 천국이 보장되는 순교자(Şehit),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참전용사(Gazi)라는 명예를 보장받는다. 이런 이슬람의 지하드 개념은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던 투르크인들의 정복정신과 잘 어울려 이슬람을 수용하는데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였다.

 

 

2. 터키인들의 이슬람 해석의 두 흐름


현대 중앙아시아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투르크인들이 수용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역사적으로 이슬람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지리적으로 방대한 규모를 요구하는 작업이라 터키 학자들 가운데서도 별다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투르크인들이 역사적으로 이슬람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제한적이지만 역사학자 푸아드 쿄프룰루(Fuad Köprülü)와 오스만 투란(Osman Turan)이 발표한 터키 이슬람 역사에 대한 몇 몇 연구결과들은 투르크인들이 이슬람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에 대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두 학자의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투르크인들이 이슬람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푸아드의 연구는 아나톨리아에 거주했던 터키인들의 종교-사회적 활동과 수피즘과 비정통적 이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비교하여, 셀축 제국역사를 전공한 오스만 투란의 연구는 이슬람이 터키계 국가들의 정치에 미친 영향력에 비중을 두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위의 두 사람의 연구는 투르크인들이 이슬람을 어떻게 국가의 종교로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하지만 터키인들이 어떻게 현재와 같은 자신들의 독특한 이슬람 이해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터키나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순니-비정통적 해석이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축적된 투르크인들의 이슬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투르크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해석은 정통 순니와 비정통적인 이슬람 두 가지가 동일한 역사, 동일한 지역에서 서로 공존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지속 발전되어온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앞에서 투르크인들의 이슬람의 수용과정에서 살펴본 내용과도 서로 일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슬람에 대한 이 두 가지 해석이 어떻게 투르크인들 사이에 받아들여지고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1) 정통 순니 이슬람


정통 순니 이슬람은 8 세기경부터 정착문화 생활로 전환한 시르다리아강, 아무다리아강 사이의 페르가나(Ferghana) 지역 주변에 거주하던 투르크 부족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수용되어 세력을 확장하였다. 8 세기경 이 지역의 부하라(Buhara), 사마르칸트(Samarkent), 멜브 (Merv) 그리고 벨흐(BeIh)와 같은 중요한 도시들에 정착했던 투르크 부족들 가운데 상당 수가 쿠란과 수나(Sunnah)에 근거를 두면서도 이성과 개인적 의견을 중요시한 하나피Hanafi) 학파와 마투리파(Matüri)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법을 중시하는 하나피 학파와 믿음을 중시하는 마투리파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이 도시들에는 당대에 유명한 여러 율법학교(Mad rasa)들이 세워졌고 이 학교들에서 중요한 이슬람 저작들이 생산되었다. 이러한 순니 이슬람의 지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이 지역에서 건국 되었던 카라한조부터, 가즈나(Gazneliler) 그리고 대 셀축제국에 이르는 투르크계 국가들과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하네피파를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로 받아들였다. 카라한조부터 시작하여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투르크계 국가들과 이 국가들의 통치를 받았던 대부분의 정착민들이 순니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된 배경에는 몇 가지 역사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요인은 지리적인 것이다. 아무다리아강 지역에서 발흥한 투르크계 국가들은 이미 이 지역에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순니 이슬람의 토양 위에서 세워졌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투르크 유목 부족 대부분이 신비주의 수피 이슬람을 수용하였지만, 이 지역으로 이주해온 부족들은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미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순니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고 국가를 세우는 과정에서도 순니 이슬람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었다. 만일 이 지역에 시 아파가 먼저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면 투르크계 국가들은 시아파쪽으로 나아갔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두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요인은 정치적, 제도적인 것이다. 투르크족들의 국가들이 발흥할 당시 아무다리아강 지역의 순니 이슬람은 이미 300 년 이상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통치에 적합한 체계화된 법과 명문화 된 신학적 유산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지역 순니 이슬람에 대한 에메비(E mevi) 제국과 압바스 통치자들의 지속적인 견제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신학, 철학, 법학 분야에서 중요한 순니 학자들이 등장하였고 이러한 신학적, 법적, 신학적 유산들은 무슬림들이 주도하는 국가의 정치적, 제도적 기틀을 놓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따라서 카라한왕조, 가즈나왕조 그리고 대 셀축제국과 같은 투르크계 국가 통치자들은 이슬람 학자들을 보호하고 그들로부터 통치에 필요한 자원을 이끌어 내었다. 그 결과 순니 이슬람이 이들 국가에시 공식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세번째 요인으로 들 수 있는 것은 당시의 국제정세 이다. 이제 새롭게 이슬람을 수용하고 건국한 투르크계 국가들은 다른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자신들의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특별히 당시 인접 강대국이었던 압바스 왕조의 통치자들과 긴장관계를 가지는 것보다, 그들로부터 합법성과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국가의 존속을 위해 아주 중요했을 것이다. 투르크계 국가들이 국민들의 대부분이 수피들을 통해 이슬람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순니파를 국가의 공식인 이슬람으로 받아들인 배경에는 이러한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질문해야 할 또 다른 사실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왜 투르크인들이 순니 이슬람의 다른 법학파들인 말리키파(Maliki)나 샤피파(Shafi) 또는 한발리파(Hanbali)가 아니라 하나피파를 받아들였고, 하나피파 내에서도 에샤리 종파(Eşari)가 아니라 마투리 종파를 선호하고 수용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이슬람의 수용과정과 투르크인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종교적 성향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하나피파와 마투리파가 가지고 있는 유연성, 개방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말리키, 샤피, 한발리 학파와 같이 쿠란과 순나를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전달하는 학파들과는 달리 하나피학파와 마투리 종파는 신앙과 정치 그리고 법의 영역에 있어서 이성과 시대적, 지역적 상황에 따라 쿠란과 순나를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원래부터 현실적 필요를 중시하는 샤머니즘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던 투르크인들에게는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하나피파를 받아들인 것이 다른 종파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자신들의 기질과 성격에 더 잘 맞았을 것이다. 투르크 무슬림들이 하나피파, 마트리파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현재 터키와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을 이해하는데 기초가 된다.


순니 이슬람이 가지고 있었던 사상적 잠재력을 파악하고 정치권력과 통치의 기반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은 대 셀축제국이었다. 대 셀축제국은 이란 지역의 시아 이슬람을 견제하면서 순니 이슬람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정책은 대셀축제국 이후 아나톨리아에서 발흥한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 까지 계속 이어져나갔다. 대 셀축제국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아나톨리아 셀축왕조도 국가적으로 순니 이슬람의 계승을 표방하였다. 그 결과 아나톨리아 셀축왕조 시대에 순니 이슬람이 현재의 터키 영토에도 정치적으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나톨리아 셀축왕조가 쿠란의 해석에 있어서 유연성과 개인의 사고의 자유를 허락하는 하나피파를 따랐기 때문에 다른 아랍 이슬람국가들과는 달리, 셀축왕조가 통치하는 지역에시는 종교와 사고를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관용이 허용되었다. 그러한 관용정책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존을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수피즘과 같이 정통 순니 이슬람의 관점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이슬람 해석과 실천이 가능하게 되는 여지를 만들어주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발흥과 함께 순니 이슬람은 정치적으로 절정기에 도달하게 되는데, 오스만 제국의 순니 이슬람은 제국의 조창기부터 세워지기 시작한 마드라스와 함께 이슬람 세계의 고전적 사고의 계승자 되었다. 이슬람 세계의 카이로, 다마스커스, 바그다드 그리고 사마르칸트와 같은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에서 양성된 오스만 율법학자들은 종교적 학문과 사고의 영역에서 순니 이슬람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은 단순히 개인적인 흥미의 차원에 머물지 않았다. 그보다 15 세기 세계 제국으로 성장한 오스만 제국에게 요구되었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실용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오스만 울라마들이 한 작업은 자신들의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한 것이 아니라 이전 시대의 법과 하디스 그리고 쿠란의 해석 분야에서 고전적인 작품들을 설명하고 주석을 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오스만 순니 이슬람은 몇 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건국부터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파티(Fatih) 황제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관용적인 모습을 보였다. 오스만 순니 이슬람이 다른 아랍 이슬람에 비해 관용적이고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서로 다른 시기에 아나톨리아를 여행했던 아랍 무슬림들과 유럽의 기독교 인들의 글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건국 초기 오스만 황제의 요구에 의해 울라마들은 자주 비잔틴 신학자들과 신학적 논쟁을 벌였다는 기록들이 전해오는데, 그러한 논쟁은 양 종교 학자들이 서로의 견해차를 이해하고 나아가 친분을 쌓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순니 이슬람이 보인 이러한 관용과 유연성은 16 세기 이란에서 시아파 이슬람이 득세하고 그 세력을 아나톨리아로 확대하려는 시도와 함께 경직되고 강경한 성격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까지 비정통적인 이슬람에 대해 별다른 정치적인 압박을 하지 않았던 오스만 제국의 중앙 정부가 갑작스럽게 이들에 대해 강력한 정치적 통제를 시작했다. 오스만 제국은 공식적인 문서들을 통하여 무신론자(Zindik, Mülhid) 이단적 무리 (ehli-i Rafızı)라고 규정한 비정통적인 이슬람에 맞서 자신이 순니파의 수호자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공포하기 시작했다. 오스만 정부가 비정통적인 이슬람에 대해 이 전과 다른 급진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신학적 문제라기보다는 이란의 시아파 사페비(Safevi)의 파상적인 공세에 맞서 자신과 영토를 수호하기 위한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비정통적 이슬람에 보인 오스만 순니 이슬람의 이러한 태도는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경직된 태도가 제국의 영토에 거주하던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에게 까지 확대되지 않았고, 시아파에 대한 정치적 박해도 이란의 위협이 사라지자 곧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과 그 후계자인 현대 터키의 역사는 외부적, 외부적 위협이 증가하고 환경이 악화되면 오스만 순니 이슬람의 관용적인 성격이 급진적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종종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투르크인들의 이슬람 이해의 근간에 놓인 순니 하나피파의 본래적 성격이라기보다 정치적 사회적 위기에 대한 반응의 차원에서 보아야할 것이다.

 


2) 비정통적 이슬람


이슬람은 초기부터 순니 이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슬람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어왔다. 이슬람은 두 주류 중의 하나인 시아파를 비롯해 우리가 앞으로 살펴 보게 될 민속 이슬람과 수피즘에 이르기까지 그 이해의 폭은 아주 다양하다. 그 가운데는 20 세기 초 인도에서 시작된 아흐마드파에 속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프리카의 이슬람 영매 이맘들도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이슬람에서 순니 이외의 해석이 하나의 예외적인 경우라기보다는 일반적인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짐을 보여준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터키인들도 이슬람 수용 초기부터 순니 이슬람과는 다른 이슬람 이해를 발전시켜 왔다. 순니 이슬람이 유목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전환하여 문자를 해독할 수 있었던 투르크인들 사이에서 뿌리를 내리고 발전해 왔다면, 비순니 이슬람은 유목생활을 하던 투르크인 부족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쳐왔다. 이들 유목민들은 사회적 존재기반과 성격 그리고 삶의 양식에 있어서 순니 이슬람을 신봉하는 사람들과 판이하게 달랐고, 그러한 차이로 인해 자신들에게 독특한 이슬람 해석을 발전시켰다. 정통 순니와는 다른 이들의 이슬람 이해는 일반적으로 비정통적(hetetodoxy)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비정통 이슬람은 순니 이슬람처럼 외부로부터 투르크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 이슬람 세계에 존재했던 다른 비정통 이슬람 분파들처럼 오랜 기간 지속된 신학적 논쟁의 산물로 생겨난 것도 아니다. 투르크인들의 비전통적인 이슬람 해석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전에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범신론적이고 신비주의적 성격의 종교의 토양 위에 이란에서 전파된 수피즘의 씨가 발아하여 생겨난 것이었다. 이렇게 생겨난 비정통적 이슬람 이해는 사회 문화적 환경에 따라 변화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비정통 이슬람 해석의 가장 특이한 점 중의 하나는 투르크인들이 이슬람 수용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여러 가지 종교의 잔재들을 이슬람의 개념과 뒤섞어 혼합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전에 전통적인 종교의 이름으로 해오던 종교적 행위들이 이름만 이슬람으로 바뀌거나, 형식은 이슬람이지만 그 내용에는 전통종교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비정통 이슬람에는 순니 이슬람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문서로 잘 정리되고 체계화된 신학이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단지 유목민들의 전통적인 구전문화 형식으로 된 구전신학이 존재한다. 그리고 구전신학은 자연스럽게 신화적인 성격을 띤 형태로 설명되고 전달된다. 그리고 이러한 비 정통적 이슬람 해석에는 척박한 자연적 환경아래서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지 않는, 정착민들에게나 통용되는 엄격한 교리적 내용과 조직적인 가르침이 자리를 잡을 여지가 없기 마련이다. 이처럼 투르크인 유목 부족들은 이슬람을 수용하기는 했지만 체계화 되고 엄격한 이슬람 규율과 종교의식을 행하는 대신에 이전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인 종교의식들을 이슬람의 이름으로 지속하였다.


투르크인들의 전통종교와 수피 이슬람을 접목한 비정통적인 이슬람이 투르크인들 가운데 빠르게 확산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은 이란의 호라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멜라메티예(Melametiye) 신비주의 학파에서 양육된 수피들이었다. 이들 가운데서 투르크인 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아흐멧 예세비 (Ahmet Yesevi)였다. 아흐멧 예세비와 그의 후계자들이 중국의 위구르에서부터 터키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분포하고 있던 투르크 부족들에게 비 정통적인 수피 이슬람을 전파하고 뿌리를 내리게 한 것은 투르크인들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 중의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슬람 이전의 전통 종교를 내용의 변화 없이 단지 이슬람이라는 옷만 입혀 전파한 이들 수피 포교자들 때문에 조상숭배나 성물숭배가 이슬람의 성인숭배나 성물숭배로 제도화 되어 투르크인들의 종교의 중심에 자리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인숭배, 성물숭배는 오늘날 수피 무슬림들뿐만 아니라 순니 무슬림 사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민속 이슬람의 가장 중요한 성격중의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 사람들은 신과 소통하고 초자연적인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성인들을 거의 신적인 위치로 격상시켜 숭배한다. 그러한 이슬람 성자숭배 의식은 일반 민간인들 사이에서 지난 수백 년 동안, 그리고 오 늘날에도 쿠란에 기초한 정통 이슬람보다 더 깊게 투르크인들의 종교적 심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터키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발칸 투르크계 국가들에 존재하는 수많은 성인들의 무덤(Türbe)들과 그 무덤들을 참배하는 사람들의 행렬은 비정통적 이슬람 해석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증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숭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비정통적 이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특징적인 성격은 혼합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혼합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비정통적 이슬람은 전파되는 모든 곳에서 이미 존재하던 서로 이질적이고 다양한 신앙들을 받아들이고 융합시켜 자신의 것으로 삼아왔다. 다른 종교에 배타적이고 변화를 쉽게 수용하지 않는 정통 순니 이슬람과는 달리 다른 종교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쉽게 혼합하는 성격을 가진 비정통적 이슬람은 오스만 군대가 발칸지역과 동유럽에 진출 했을 때 그 지역 주민들이 큰 저항감 없이 이슬람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비정통 이슬람은 신비주의적이고 혼합주의적 성격 외에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을 하나 지니고 있는데, 바로 혁명적 메시아 이데올로기이다. 비정통 이슬람에 혁명적 메시아 이데올로기가 어떤 경로를 통해 유입되고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뿌리를 둔 이란의 메시아 문화가 투르크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투르크 역사를 살펴보면 9, 10 세기 중앙아시아에서 그리고 13 세기 이후에는 아나톨리아와 발칸지역에서 중 앙 정부에 대항해 자신들의 종교적, 사회적 권리를 주장하는 일련의 강한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13 세기 아나톨리아 셀축왕조 치하에서 바바이(Babailer)들이 일으켰던 반란과 15 세기 오스만제국 치하에서 발칸지역에서 발생했던 셰히 베드레딘 반란(Şeyh Bedreddin isyanı) 그리고 16 세기에 아나틀리아에서 발생한 반란의 주요한 부분들은 비정통 이슬람이 가지고 있는 혁명적 메시아 이데올로기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전형적인 사건들이라 하겠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혁명 적 메시아 이데올로기는 지금도 알레비파나 다른 비정통적 타리카트들에게 계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한 비정통적 이슬람 해석은 11 세기부터 중앙아시아 투르크 부족들 가운데 신비주의적 타리카트 그룹들을 통하여 세력을 확대해 감과 동시에 서쪽으로 이동했던 투르크 유목 부족들을 통하여 아나톨리아에도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13 세기 초에 와서는 칼렌데리(Kalenderilik), 예세비(Yesevi), 알레비((Alevilik), 하이다리(Haydarilik) 그리고 베파이(Vefailik)와 같은 타리카트들에서 수피즘 형태로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수피 타리카트들에서 나타나는 비정통 이슬람적인 요소는 16 세기 초에 벡타쉬(Bektaşlik) 속으로 흡수되어 최종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터키의 벡타쉬 타리카트는 비전통적인 이슬람이 수피즘의 형태로 표현된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정통 이슬람을 따르면서 수피 타리카트에 가담하지 않고 남아있던 투르크 유목민들은 15 세기 말에 이란의 시아파 샤 이스마엘(Şah İsmail)의 주도로 시작된 사페비(SafevD 운동의 영향을 받아 12 이맘파와 그로부터 분열되어 나온 분파들과 혼합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알리(Ali) 숭배와 12 이맘 숭배 그리고 케벨라(Kebela) 숭배가 시아파 계통의 비정통 이슬람 해석의 핵심적인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비정통적 이슬람이 외양은 갖추기는 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순니 이슬람이나 시아파 이슬람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비록 외관상으로는 수피 타리카트나 시아파의 형태를 가지기는 했지만 비정통적 이슬람이 순니 혹은 시아파와 구별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신에 대한 신앙이 가지는 자신들만의 독특성이다. 벡타쉬나 알레비와 같은 비정통적 이슬람에서 말하는 신(Allah)은 정통이슬람에서 말하는 피조물을 초원한 창조주가 아니라 범신론적인 신의 성격을 가진다. 알리를 신으로 높여 숭배하는 것도 신이 알리의 형태로 자신을 드러낸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모든 사람도 신의 일부라고 여겨 진다. 그래서 알레비파나 벡타쉬에서 말하는 알리는 무함마드의 사위이며 이슬람의 지도자였던 역사적 인물인 알리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숭배된다. 이러한 알리 숭배가 터키 비정통 이슬람의 신학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12 이맘과 케벨라 숭배가 비정통 이슬람의 외형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물론 이때의 12 이맘과 케벨라도 비 정통 이슬람에 의해서 재해석된 것이다.

 

 

 

- 김성운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 2015 실크로드 포럼(터어키), 주특강 발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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